스무 해 전 큰어머니의 양자가 된 남성이 있습니다. 왕래는 오래전에 끊겼고, 양어머니는 지난해 치매 진단을 받아 지금은 친딸이 성년후견인으로 곁을 지킵니다. 양자 쪽에서는 이참에 서로 합의해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양어머니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많고, 친딸은 자기가 대신 도장을 찍으면 되는지 묻습니다. 협의 파양에서 누가 당사자이고 누가 동의하는 사람인지, 민법은 그 자리를 생각보다 정확하게 나눠 두었습니다.
치매 진단서만으로 동의할 사람이 정해지나
정해지지 않습니다.
진단은 의학의 판단이고, 후견은 가정법원의 심판입니다. 민법 제902조가 말하는 사람은 치매 환자가 아니라 피성년후견인인 양부모입니다.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받아 그 지위에 들어선 사람만 이 조문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래서 진단만 있고 심판이 없는 상태라면 양어머니는 법적으로 여전히 혼자 파양을 협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 뜻을 낼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한 협의는 나중에 효력을 다툴 빌미가 됩니다. 판단이 흔들리는 날이 잦다면 협의를 서두르기보다 후견개시 심판을 먼저 받는 쪽이 안전합니다.
후견개시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등이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원칙적으로 의사에게 정신상태를 감정하게 하고, 그 결과와 본인의 의사를 함께 살펴 결정합니다.
후견이 열린 양부모는 누구의 동의를 받나
제902조의 문장은 간단합니다. 피성년후견인인 양부모는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파양을 협의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어는 양부모 본인입니다. 협의하는 사람은 여전히 양어머니이고, 성년후견인은 그 협의에 동의를 보태는 사람입니다. 친딸이 어머니 대신 협의 당사자가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짧게 말하면, 대신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곁에서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동의와 대리의 차이
대리는 본인을 갈음해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고, 동의는 본인이 한 의사표시에 효력을 보태는 것입니다. 협의 파양에서 성년후견인에게 주어진 몫은 동의입니다. 양어머니가 파양할 뜻을 스스로 밝히지 못한다면 동의할 대상부터 없습니다.
양자 쪽이 후견을 받는다면 협의 자체가 막힌다
방향을 바꾸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제898조는 협의 파양을 허용하면서 단서를 붙였습니다. 양자가 미성년자이거나 피성년후견인이면 협의로는 파양할 수 없습니다.
양부모가 후견을 받는 경우에는 동의라는 보완 장치를 두었지만, 양자가 후견을 받는 경우에는 그런 장치 없이 협의의 문을 닫았습니다. 양자의 지위를 잃는 쪽이 더 보호가 필요하다고 본 셈입니다.
미성년 양자도 같은 이유로 협의에서 빠집니다. 이 경우 제906조가 따로 길을 냈는데, 13세 이상이면 입양에 동의했던 부모의 동의를 받아 양자가 직접 청구하고, 13세 미만이면 입양을 승낙했던 사람이 양자를 갈음해 청구합니다.
| 양부모 | 양자 | 협의 파양 |
|---|---|---|
| 후견 없음 | 성년, 후견 없음 | 가능 |
| 피성년후견인 | 성년, 후견 없음 | 성년후견인 동의를 받아 가능 |
| 후견 없음 | 미성년자 | 불가, 재판상 파양만 |
| 누구든 | 피성년후견인 | 불가, 재판상 파양만 |
후견인이 바로 그 양자라면 어떻게 하나
실제로 꽤 생기는 장면입니다. 양부모를 돌보던 양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어 있는데, 그 양자가 파양을 원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양자는 협의의 상대방이면서 동시에 그 협의에 동의할 사람이 됩니다. 한 사람이 양쪽 자리에 앉는 셈이라 이해가 부딪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큽니다. 민법 제949조의3은 후견인에게 친권자의 이해상반행위 규정을 준용해 특별대리인을 세우도록 하고, 후견감독인이 있는 경우만 예외로 둡니다.
그러니 이런 사안이라면 협의서를 쓰기 전에 가정법원에 절차를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신고가 수리된 뒤에 이 문제가 드러나면 파양의 효력을 둘러싼 다툼이 길어집니다.
신고 창구에서는 무엇을 확인하나
협의 파양은 합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904조가 입양의 성립 규정을 준용하므로 신고를 해야 효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제903조가 그 신고를 받는 기준을 정했습니다. 제898조와 제902조, 그 밖의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파양 신고는 수리하여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양자가 피성년후견인인데 협의 파양으로 신고했거나, 양부모가 피성년후견인인데 후견인 동의가 빠졌다면 창구에서 반려됩니다.
- 후견등기사항증명서로 양부모의 후견 개시 여부와 후견인이 누구인지 확인합니다.
- 성년후견인에게 파양 협의에 대한 동의를 서면으로 받습니다.
- 양부모 본인이 파양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상태인지 진료 기록으로 확인해 둡니다.
- 파양 신고서에 동의 서면을 붙여 신고합니다.
주의
사기나 강박으로 이루어진 협의 파양은 취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제904조가 준용하는 규정에 따라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청구하지 못합니다. 서두른 협의가 뒤늦게 문제 될 때 기한이 짧다는 점을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협의가 안 되면 남는 길은
재판상 파양입니다. 제905조는 학대나 유기, 심히 부당한 대우, 3년 이상 생사불명, 그 밖에 양친자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원인으로 듭니다.
후견을 받는 사람이 끼어 있어도 이 길은 열려 있습니다. 제906조 제3항이 양부모나 양자가 피성년후견인이면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파양을 청구할 수 있게 했고, 제4항은 피성년후견인인 양자를 위해 검사도 청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재판상 파양은 나류 가사소송사건이라 조정을 먼저 거치며, 관할은 양부모 중 1명의 주소지 가정법원입니다.
어느 길로 끝나든 효과는 같습니다. 입양으로 생긴 친족관계는 파양으로 종료하고, 재판상 파양이라면 과실 있는 쪽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규정도 준용됩니다.
정리
치매 진단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성년후견개시 심판이 있어야 양부모는 피성년후견인이 되고, 그때부터 협의 파양에 성년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협의의 당사자는 끝까지 양부모 본인이고 후견인은 동의자입니다. 양자가 피성년후견인이라면 협의는 아예 불가능하고 재판상 파양으로 가야 합니다. 후견인과 양자가 같은 사람이라면 특히 조심해야 하니, 협의서를 쓰기 전에 변호사와 함께 누가 어떤 자리에 앉는지부터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9조, 제776조, 제806조, 제823조, 제898조, 제902조, 제903조, 제904조, 제905조, 제906조, 제908조, 제921조, 제949조의3 · 가사소송법 제2조, 제30조, 제45조의2, 제5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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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후견인인 제가 어머니 대신 파양 서류에 서명해도 되나요?
협의 파양의 당사자는 피성년후견인인 양부모 본인이고, 성년후견인은 그 협의에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파양할 뜻을 스스로 밝힐 수 없다면 동의로 메울 수 없으므로 재판상 파양을 검토하셔야 합니다.
치매 진단만 받았고 후견 신청은 안 했습니다. 그냥 합의하면 되나요?
심판이 없으면 양부모는 혼자 협의할 수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다만 협의 당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가 나중에 다툼이 되기 쉬우니 진료 기록을 확보하고, 판단이 자주 흔들린다면 후견개시 심판을 먼저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양자인 동생이 후견을 받고 있습니다. 협의로 정리할 수 없나요?
양자가 피성년후견인이면 협의 파양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재판상 파양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고, 검사도 그 양자를 위해 청구할 수 있습니다.
파양 신고가 반려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부모가 피성년후견인인데 후견인 동의 서면이 빠졌거나, 양자가 피성년후견인 또는 미성년자인데 협의 파양으로 신고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후견등기사항증명서로 두 사람의 지위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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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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