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싱가포르 지사로 발령을 받은 것은 결혼 4년째였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터라 아내는 서울에 남기로 했고, 처음 1년은 영상 통화로 버틸 만했습니다. 그런데 2년 계약이 끝날 무렵 남편이 1년 더 있겠다고 하더니, 생활비 송금도 들쭉날쭉해졌습니다. 아내는 이게 동거 의무를 어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남편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 문제인지 헷갈립니다. 민법 제826조의 한 문장을 둘로 나눠 보면 답의 방향이 보입니다.
동거 의무에는 처음부터 예외가 적혀 있다
민법 제826조 제1항 본문은 부부가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단서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않는 경우에는 서로 인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용한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발령, 지방 근무, 장기 입원, 학업처럼 함께 살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면 다른 쪽은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탓할 수 없다는 구조입니다. 동거 의무는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라, 생활의 현실을 감안해 일시적인 떨어짐을 허용하는 의무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 허용의 범위입니다.
정당한 이유와 일시성, 두 요건을 따로 본다
단서가 적용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이유가 정당해야 하고, 별거가 일시적이어야 합니다.
회사의 인사 명령은 정당한 이유의 전형입니다. 거절하면 직장을 잃을 수 있고, 가족의 생계와 직결됩니다. 이 단계에서 아내가 남편을 탓하기는 어렵고, 반대로 남편도 따라오지 않은 아내를 탓하기 어렵습니다. 아이의 학교, 아내의 직장 같은 사정도 그 자체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쪽은 일시성입니다. 처음에 정한 기간이 끝났는데도 귀국을 미루고, 언제 돌아올지 말하지 않는다면 별거는 점점 일시적이라고 보기 어려워집니다. 연장 자체가 회사의 요구였는지, 본인이 원한 것인지, 배우자와 상의했는지가 판단을 가릅니다.
| 상황 | 정당한 이유 | 일시성 | 동거 의무와의 관계 |
|---|---|---|---|
| 회사 명령으로 2년 해외 근무, 귀국 일정 정해짐 | 있음 | 있음 | 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별거 |
| 근무가 끝났는데 귀국을 계속 미룸 | 약해짐 | 흐려짐 | 다툼의 여지가 커짐 |
| 발령을 핑계로 연락과 생활비를 끊음 | 명목뿐 | 판단 이전의 문제 | 부양·협조 의무 위반이 함께 문제 됨 |
| 배우자 반대에도 스스로 해외 근무를 자원 | 따져 봐야 함 | 기간에 따라 다름 | 합의 과정과 이후 태도가 중요 |
떨어져 살아도 부양과 협조는 멈추지 않는다
사례에서 더 무게가 실리는 쪽은 생활비입니다.
제826조 제1항 단서가 면제하는 것은 동거뿐입니다. 같은 문장에 들어 있는 부양과 협조 의무는 그대로 남습니다. 민법 제833조도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한다고 정합니다.
남편이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 남은 가족의 생활비를 끊거나 크게 줄였다면, 그것은 정당한 별거와 별개로 부양 의무의 문제가 됩니다. 아내는 가정법원에 부양이나 생활비용 부담에 관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청구는 가사소송법상 마류 가사비송사건이어서 조정을 먼저 거치게 됩니다.
마류 가사비송사건
부부의 동거·부양·협조·생활비용 부담, 자녀 양육, 재산분할처럼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가정법원이 정해 주는 사건 묶음입니다. 심판을 청구하기 전에 먼저 조정을 신청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함께 가자는 쪽과 남겠다는 쪽, 동거 장소는 누가 정하나
반대 방향의 다툼도 있습니다. 남편이 가족 모두 싱가포르로 오라고 하는데 아내가 거절하는 경우입니다.
제826조 제2항은 동거 장소를 부부의 협의로 정하도록 하고, 협의가 되지 않으면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가정법원이 정한다고 합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정법원은 양쪽의 직장, 자녀의 교육과 적응, 해외 근무의 기간과 성격, 각자의 건강 같은 사정을 함께 볼 것입니다.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아내가 동거 의무를 어겼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협의가 어떻게 오갔는지가 먼저 검토됩니다.
별거가 길어지면 이혼 사유로 이어지나
정당한 이유가 있는 일시적 별거는 그 자체로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별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정이 바뀌면 판단도 달라집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귀국을 거부하면서 생활비와 연락까지 끊었다면, 민법 제840조의 악의의 유기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실무에서는 별거 기간의 길이보다 그 사이 부부가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더 비중 있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기록이 판단을 좌우합니다.
주의
해외 근무 중인 배우자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느껴진다면 그 시점부터 생활비 송금 내역, 귀국 일정에 관한 대화, 회사의 발령·연장 문서를 모아 두십시오. 별거가 정당했는지, 언제부터 정당하지 않게 되었는지를 나중에 가르는 자료가 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처음 발령 때 정한 기간과 귀국 계획을 문서나 메시지로 확인합니다.
- 연장이 회사 요구였는지 본인 선택이었는지 상대에게 분명히 묻고 답을 남깁니다.
- 생활비가 줄었다면 액수와 시점을 정리해 부양료 조정 신청을 검토합니다.
- 함께 이주할지를 두고 다툰다면 협의 내용을 정리하고, 안 되면 동거 장소에 관한 심판을 고려합니다.
정리
해외 발령처럼 정당한 이유로 잠시 떨어져 사는 것은 동거 의무 위반이 아니고, 다른 쪽이 받아들여야 하는 별거입니다. 다만 그 별거가 정해진 기간을 넘어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면 일시성이 흔들립니다.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부양과 협조 의무는 남습니다. 생활비가 끊겼다면 동거 문제와 따로 가정법원의 처분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혼까지 고민하고 있다면 별거의 경위와 그 사이의 태도를 보여 주는 자료를 정리한 뒤 변호사와 다음 순서를 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826조, 제833조, 제840조 · 가사소송법 제2조, 제50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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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남편 해외 발령에 따라가지 않으면 제가 동거 의무를 어긴 건가요?
동거 장소는 부부가 협의해 정하고 협의가 안 되면 가정법원이 정하므로, 자녀 교육이나 직장 같은 사정이 있다면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의무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해외 근무 기간이 계속 연장되면 어떻게 되나요?
정당한 이유로 인한 별거라도 일시적이어야 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별거가 됩니다. 연장이 회사 요구였는지, 배우자와 상의했는지, 귀국 계획이 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떨어져 사는 동안 생활비를 안 보내면 청구할 수 있나요?
별거가 정당하더라도 부양과 협조 의무는 남습니다. 가정법원에 부양이나 생활비용 부담에 관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정을 먼저 거칩니다.
오래 따로 살았으면 이혼 사유가 되나요?
정당한 이유가 있는 일시적 별거는 그 자체로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귀국을 거부하고 부양까지 끊었다면 악의의 유기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유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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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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