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공증사무소에서 큰아들과 후견계약을 맺었습니다. 몇 해 뒤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서 계약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큰아들이 아버지 돈을 제 사업에 끌어다 쓴 사실이 드러나 해임 심판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직후입니다. 해임 사실이 등기에 반영되기 전, 큰아들이 아버지 명의 상가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매수인은 큰아들이 해임된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 계약은 아버지에게 효력이 있을까요. 민법 제959조의19가 이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합니다.
임의후견인의 대리권은 어디서 나오나
법원이 주는 권한이 아닙니다. 본인이 계약으로 준 권한입니다.
제959조의14 제1항은 후견계약을 재산관리와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맡기고 그 사무에 관한 대리권을 주는 계약이라고 정의합니다. 계약은 공정증서로 맺어야 하고,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효력이 생깁니다.
공증을 마쳤다고 곧바로 권한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감독인이 선임되기 전에는 본인이나 임의후견인이 공증인의 인증을 받은 서면으로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단계이고, 이 시기의 임의후견인에게는 아직 행사할 대리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리권의 크기도 계약서가 정합니다. 예금 관리만 맡겼다면 부동산 처분은 처음부터 권한 밖이고, 그런 거래는 소멸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권한 없는 대리의 문제가 됩니다. 이 글은 권한 안에 있던 행위가 권한이 사라진 뒤에 이루어진 경우를 다룹니다.
대리권은 어떤 경우에 사라지나
사라지는 길은 여러 갈래이고, 대부분 법원의 심판을 거칩니다.
| 사유 | 근거 | 특징 |
|---|---|---|
| 임의후견인 해임 | 민법 제959조의17 제2항 | 현저한 비행이나 임무에 맞지 않는 사유가 있을 때 청구로 해임 |
| 후견계약 종료 허가 | 민법 제959조의18 제2항 | 감독인 선임 뒤에는 정당한 사유와 법원 허가가 필요 |
| 성년·한정후견 개시 |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 | 본인이 개시 심판을 받으면 후견계약 종료 |
| 본인 사망, 대리인 사망·성년후견개시·파산 | 민법 제127조 | 대리 일반의 소멸 사유 |
표의 어느 길로 끝나든 대리권은 그 순간 사라집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고, 둘 사이의 틈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등기 전에 맺은 거래, 본인은 무효를 주장할 수 있나
제959조의19는 임의후견인의 대리권 소멸은 등기하지 아니하면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대항할 수 없다는 말은 아버지 쪽에서 매수인에게 큰아들은 이미 권한이 없었으니 계약은 효력이 없다고 내세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매수인이 해임 사실을 몰랐다면, 아버지는 해임되기 전의 큰아들이 맺은 계약처럼 그 거래를 떠안는 결과가 됩니다.
가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견계약은 등기로 공시되는 제도이고, 거래 상대방이 확인할 수 있는 창구도 등기뿐입니다. 등기를 믿고 거래한 사람과 등기를 고치지 않은 쪽 가운데, 법은 고칠 수 있었던 쪽에 위험을 지웠습니다. 표시된 권한이 실제 권한과 어긋난 책임을 공시를 관리할 수 있었던 쪽에 둔 셈입니다.
일반 대리 규정과는 어디가 다른가
민법 총칙에도 비슷한 조문이 있습니다. 제129조는 대리권의 소멸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제삼자가 과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제959조의19에는 그 단서가 없습니다. 대신 등기라는 기준이 들어 있습니다. 문언만 놓고 보면 임의후견에서는 상대방이 조금 더 주의했으면 알 수 있었는지를 따지기보다, 소멸이 등기되었는지와 상대방이 실제로 몰랐는지가 먼저 갈림길이 됩니다.
이 차이는 가족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권한이 끝났다면 등기를 고치는 일이 무엇보다 앞서야 합니다. 거래 상대방의 부주의를 나중에 따지는 방법에 기대기는 어렵습니다.
선의의 제3자
여기서 선의는 착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을 몰랐다는 뜻입니다. 대리권이 사라진 사실을 몰랐던 거래 상대방이 보호 대상이고, 알고 있었던 사람은 등기 전이라도 이 조문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등기 전 틈을 줄이려면 가족은 무엇을 하나
등기가 반영되기까지의 공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대신 그 사이에 선의의 상대방이 생기지 않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 해임이나 종료 심판이 나오면 확정 여부와 등기 반영 시점을 곧바로 확인합니다.
- 본인 명의 계좌가 있는 금융기관에 해임 사실을 서면으로 알립니다.
- 부동산을 중개하던 사무소, 거래하던 임차인과 매수 희망자에게도 같은 내용을 통지합니다.
- 전 임의후견인이 쥐고 있던 인감, 통장, 등기권리증을 회수합니다.
- 임의후견감독인과 함께 처리 경과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통지를 받은 상대방은 더 이상 몰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등기가 늦어지는 동안에도 통지가 닿은 곳에서는 대항할 길이 열립니다.
거래 상대방은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반대로 임의후견인과 거래하는 쪽이라면 확인할 것이 분명합니다.
확인할 것
· 거래 직전에 새로 발급받은 후견등기사항증명서
· 증명서에 적힌 대리권의 범위에 이번 거래가 들어가는지
· 임의후견감독인이 누구인지와 연락 가능 여부
· 해임이나 종료 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는지
부동산처럼 금액이 큰 거래라면 증명서의 발급일이 계약일과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한 달 전에 떼어 둔 증명서는 그 사이에 나온 해임 심판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마지막 항목이 가볍지 않습니다. 해임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면 등기가 바뀌기 전이라도 선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중에 계약 효력을 다투게 되면 거래 당시 무엇을 알았는지가 쟁점이 되므로, 확인한 서류와 날짜를 남겨 두는 습관이 상대방 자신을 지킵니다.
정리
임의후견인의 대리권은 계약에서 나오고, 해임이나 종료 허가, 성년·한정후견 개시 같은 사유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소멸은 등기되기 전에는 사실을 모른 거래 상대방에게 내세울 수 없습니다.
총칙의 표현대리와 달리 과실을 따지는 단서가 없으니, 가족 쪽에서는 등기 반영을 서두르고 그 사이 알려야 할 곳에 서면으로 통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미 등기 전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를 보여 줄 자료부터 모으시고, 계약의 효력을 다툴지는 변호사와 함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27조, 제129조, 제959조의14, 제959조의15, 제959조의17, 제959조의18, 제959조의19, 제959조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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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해임 심판이 나온 날 바로 대리권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대리권이 사라지는 것과 그 사실을 거래 상대방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소멸이 등기되기 전이라면 사실을 몰랐던 상대방에게는 대리권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은행에 해임 사실을 미리 알렸는데도 인출이 이루어졌습니다.
통지를 받은 은행은 해임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선의의 제3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통지한 날짜와 방법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한 뒤 은행에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하십시오.
계약서에 없는 일을 임의후견인이 처리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후견계약에서 맡기지 않은 사무라면 처음부터 대리권이 없던 행위입니다. 대리권 소멸의 등기 문제가 아니라 권한 없는 대리의 문제로 따지게 됩니다.
아버지가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받으면 임의후견인은 어떻게 되나요?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받으면 후견계약은 종료됩니다. 이때도 대리권 소멸이 등기되기 전에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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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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