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앞으로 나온 보험금이나 조부모가 넘겨준 땅을 부모가 대신 정리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민법은 이 자리를 친권자의 대리권으로 설명하면서, 같은 조문 안에 곧바로 단서를 붙여 두었습니다. 대리할 수 있다는 말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가 대리권의 범위이고 어느 지점부터 다른 절차가 필요한지를 조문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
대리권은 어디에서 나오나
출발점은 재산의 주인이 누구인가입니다.
제916조는 자녀가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그 특유재산으로 하고, 법정대리인인 친권자가 이를 관리한다고 정합니다. 명의가 아이에게 있으면 소유자는 아이이고 부모는 관리자라는 구도입니다.
제920조 본문이 그 관리를 법률행위 차원으로 옮깁니다. 법정대리인인 친권자는 자녀의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에 대하여 그 자녀를 대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예금 해지, 부동산 매각, 보험금 청구가 모두 이 문장에 기대어 이루어집니다.
특유재산
자녀가 자기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입니다. 세뱃돈을 모은 예금, 상속으로 받은 지분, 사고 보험금이 여기에 듭니다. 소유권은 자녀에게 있고 친권자는 관리와 대리를 맡을 뿐이므로, 부모의 생활자금과 섞이는 순간 나중에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본문 뒤에 붙은 단서가 막는 것
제920조는 한 문장을 더 붙였습니다.
자녀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를 부담할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재산을 넘기거나 받는 일과 달리, 아이가 몸으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이행되는 의무를 지우는 계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역 배우의 출연 계약, 미성년 선수의 소속 계약, 도제 형태의 노무 제공 약정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이런 계약은 대리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 이것만 따로 떼어 놓았는지는 조문의 구조에서 읽힙니다. 재산은 돌려놓을 수 있지만 사람의 시간과 노동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형에서는 본인의 동의가 별도로 요구됩니다. 제949조 제2항은 후견인에게도 같은 단서를 준용합니다.
이해가 맞부딪히면 부모가 대리하지 못한다
제921조가 이 대목을 맡습니다.
제1항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득실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행위라면, 도장을 찍기 전에 특별대리인을 세워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라는 것입니다. 제2항은 한 친권에 딸린 여러 자녀 사이에 몫이 갈리는 경우를 같은 방식으로 다룹니다.
가장 잦은 장면이 상속입니다. 아버지가 사망해 어머니와 미성년 자녀가 함께 상속인이 된 상태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대리해 분할협의서에 도장을 찍으면, 한 사람이 양쪽 자리에 앉는 셈이 됩니다.
자녀가 둘 이상이면 각각 따로 살펴야 합니다. 형제 사이에 몫이 갈리면 한쪽에는 특별대리인이 필요합니다.
| 상황 | 밟아야 할 절차 |
|---|---|
| 자녀 명의 예금을 해지해 자녀 앞으로 다시 예치 | 대리권 범위 안 |
| 부모와 자녀가 공동상속인인 재산의 분할협의 | 특별대리인 선임 청구 |
| 자녀 명의 부동산에 부모 채무의 담보를 설정 | 특별대리인 선임 청구 |
| 자녀가 직접 출연이나 노무를 해야 하는 계약 | 자녀 본인의 동의 |
부모가 함께 친권자일 때는 어떤가
둘이 함께 행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제920조의2는 그 원칙에 현실적인 예외를 답니다. 부모의 한쪽이 공동명의로 자녀를 대리하거나 자녀의 법률행위에 동의한 때에는 다른 한쪽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효력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려는 규정입니다. 서류에 두 사람 이름이 올라 있는데 실제로는 한 사람만 관여했다는 사정을 상대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같은 조문의 뒷부분이 문을 닫습니다. 상대방이 악의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쪽이 반대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진행한 거래라면 보호받지 못합니다.
제삼자가 준 재산은 결이 다르다
제918조가 따로 다룹니다.
재산을 대가 없이 건네준 사람이 부모의 관리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두었다면, 그 재산은 친권자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놓입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건물을 주면서 부모는 손대지 말라고 못박아 둔 경우가 전형입니다.
관리할 사람이 비면 법원이 채웁니다. 제2항은 제삼자가 관리인을 지정하지 않은 때 자녀나 제777조의 친족이 청구하면 법원이 관리인을 선임하도록 하고, 제3항은 지정된 관리인의 권한이 소멸한 경우에도 같게 처리합니다.
선을 넘은 거래는 어떻게 되나
선을 넘으면 거래 상대방까지 함께 흔들립니다.
특별대리인을 세웠어야 하는데 부모가 그대로 서명했다면 그 행위는 권한 없이 한 대리로 다투어집니다. 등기가 이미 넘어간 뒤라도 자녀 쪽에서 효력을 문제 삼으면 매수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됩니다.
단서를 어긴 계약도 비슷한 자리에 놓입니다. 아이가 몸으로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본인 동의 없이 지운 약정이라면 구속력이 흔들립니다.
관리 자체의 잣대는 제922조가 정합니다. 두 권한을 쓸 때 자기 재산을 다룰 때와 같은 정도로 주의하라는 내용입니다. 남의 돈을 맡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수준보다는 느슨하지만, 자기 돈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아이 돈으로 했다면 이 문장에 걸립니다.
주의
특별대리인 없이 이루어진 이해상반행위는 나중에 효력을 다투는 재료가 됩니다. 등기까지 마쳤더라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성년이 된 뒤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실제로 있으므로, 서류에 자녀 이름이 들어가는 거래라면 먼저 성격부터 가려 두십시오.
실제로 무엇을 챙겨야 하나
순서를 정해 두면 놓치지 않습니다.
- 거래 대상이 자녀 명의인지 부모 명의인지 등기부와 통장으로 확인합니다.
- 그 거래로 부모와 자녀의 득실이 반대로 움직이는지 따져 봅니다.
- 반대로 움직인다면 가정법원에 특별대리인 선임을 청구합니다.
- 자녀가 몸으로 이행해야 하는 계약이라면 자녀 본인의 동의를 서면으로 남깁니다.
- 받은 돈은 자녀 명의 계좌로 넣고 사용처마다 증빙을 붙여 둡니다.
확인할 것
· 자녀 명의 재산의 취득 경위와 자금 출처
· 증여나 유언에 관리 방법을 정한 문구가 있는지
·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친권자인지, 한쪽만인지
· 거래 상대방이 사정을 알고 있었는지
정리
제920조 본문은 친권자에게 자녀 재산에 관한 대리권을 주고, 단서는 자녀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를 부담할 때 본인의 동의를 요구합니다.
이해가 상반되는 거래는 제921조에 따라 특별대리인의 몫이고, 제삼자가 관리에 반대한 재산은 제918조에 따라 아예 손이 닿지 않습니다. 관리의 잣대는 제922조의 주의의무이고, 그 선을 넘은 거래는 자녀만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까지 분쟁으로 끌어들입니다.
거래 하나가 대리권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는 서류를 놓고 따져야 갈립니다. 자녀 명의 재산을 움직일 계획이 있으시다면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변호사와 함께 절차부터 확인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777조, 제916조, 제918조, 제919조, 제920조, 제920조의2, 제921조, 제922조, 제94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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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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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아이 명의 아파트를 팔아 더 작은 집으로 옮기려 합니다.
매도 자체는 자녀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이므로 친권자가 대리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다만 매각 대금이 부모의 채무 변제나 부모 명의 취득으로 흘러간다면 이해가 갈리는 거래로 평가될 수 있으니 자금의 흐름을 미리 설계해 두십시오.
남편이 반대하는데 제가 부부 공동명의로 서명해도 되나요?
제920조의2에 따라 공동명의로 한 대리는 다른 한쪽의 의사에 반해도 효력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반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보호가 미치지 않으므로 다툼의 소지가 큽니다.
아이가 광고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약하면 되나요?
자녀가 직접 출연해야 이행되는 계약이라면 자녀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에 해당합니다. 제920조 단서에 따라 자녀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동의 사실을 계약서에 남겨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땅을 주며 부모는 관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918조 제1항이 적용되어 친권자는 그 재산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별도로 관리인이 지정되어 있지 않다면 법원에 관리인 선임을 청구해 관리 주체를 세워 두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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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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